The Monthly Photo Art Magazine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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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Höch

 

생명이 짧은, 헛된 무언가를 상징하는 비영속성(ephermerality)의 개념은 “예술작품은 시대를 거슬러 영원해야한다”는 원칙에 도전한다. “시간”에 예민한 예술가들은 – 그 시대의 성격을 대변하면서도 당대를 뛰어넘는 독창성을 가져야 한다는 – 현대미술에 오면 때론 비 영속성을 강조한 작품들을 작업한다. 우리에게 불멸의 작가로 남아있는 피카소와 브라크는 의도적으로 잠시 읽히고 버려지는 대중문화, 신문매체등을 오려서 미술작품으로 더하는 “꼴라주”라는 기법을 예술작품에 처음 시도하고, 이름까지 붙였다. 가치없는 오브제를 붙였지만이들작품이 이제 역사적인 그림으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역사의 파라독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현대미술작가들의 족적이 역사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바로 “비평”이다. 이러한 비평을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힘은 미술관이다. ‘꼴라주’라는 기법을 이어받은 작가 중 지금까지 많이 거론되지 않은 작가의 회고전이 런던의 화이트체펠 미술관에서 열려서 찾아가봤다.

화이트체펠 미술관은 1909년에 생긴 세계적인 미술의 지형도를 읽는데 중요한 미술관이다.

영국역사에서 기획전시를 위해 국가예산을 사용했던 첫 공립미술관으로 앞서 말한 피카소의 중요한 작품 “게르니카”도 1938년 스페인내전을 반대하는 투어전시 일환으로 이곳에서 전시되었다. 이곳에서, 영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하나호쉬를 조명하는것은 그만큼 미술사에 족적을 남기는 중요한 전시를 기획하겠다는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강조이기도 하다.

하나 호쉬는 베를린 다다운동 (1차세계다전, 1914-1918년, 말엽부터 거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비합리성, 반도덕, 비심미적(非審美的)인것을 찬미하였던 운동)의 중요한 작가이자 꼴라주 기법을 초기부터 받아들여 여러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킨 선구적 작가 중 하나로, 패션 잡지에서부터 신문에서 발췌한 이미지들은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그녀만의 유머스럽고 때로는 감동적인 사회적 의견을 남겼다. 대중에게 낯설지만 그녀는 그 당시 큰 활약을했다. 독일의 풍자적 캐리커쳐를 그리고, 다다운동을 대표했던 게르오게 그로스 (Geroge Grosz)와 네덜란드의 데스틸 운동의 정신적 아버지였던 테오 밴 두즈버그 (Theo van Doesburg)와 같은 동 시대 작가들에게 크게 존경을  받았다.

이번 전시는 미술사에서 크게 조명받지 못했던 그녀의 작품들을 폭넓게 조명한다. 100점이넘는 작품들은 전 세계의 주요 미술관에서 빌려와서 하나 호쉬의 런던에 집합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가 작업했던 작품들은 시기별로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는 다다운동에 참여하면서 그녀가 잠시 몸을 담았던 패션산업을 응용한 초기 작품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제1차세계대전 직후 1918년에 일어난 독일혁명으로 인해 탄생된 바이마르공화국 기간 동안 하나 호쉬가 작업한 “바이마르공화국의 새로운 여성”의 개념에 대해서 꼬집은 작품들로 이어진다.

특히 필자의 기억속에 각인된 작품들은 “박물관으로부터”라는 시리즈였다. 여성의 몸의 이미지와 탈을 접목시켜서 1920년대의 전위적인 극과 패션의 스타일을 보여준 작품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나 호쉬는 2차세계대전 동안에도 베를린 외각에 머물며 시적인 추상 작업들을 계속했는데, 점점 부각되어 갔던 소비사회에 대한 의견들이 돋보인다. 그녀는 당시에 크게 인정을 받으며, 파리의 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과 베를린의 국립미술관(Berlin Nationalgalerie)에서 회고전을 갖고, 1978년에 세상을 떠날때까지 베를린에 거주했다. 다음은 그녀의 이번전시를 기획한 화이트체펠 미술관 큐레이터와의 일문일답이다.

당신은 런던에서 최초로 단독전시회를 개최한 하나호쉬 (Hannah Hoch)의 큐레이터인데, 화이트체펠 미술관과 그리고 당신에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이번전시는 화이트체펠 미술관의 큐레이팅 연구소의 소장인 Daniel F.Herrmann과 Dawn Ades교수와 공동으로 기획을 했습니다. 저는 비평과 번역일을 하며 2010년부터 화이트체펠의 Assistant Curator로 일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는데, 그중에는 Johon Stezaker, Wilhelm Sasnal Gerard Byrne, Kader Attia와 함께하는 작업이 있습니다. 2012 런던올림픽 동안 열린 런던 2012 페스티벌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Rachel Whiteread가 미술관 파사드에 영구설치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화이트체펠 미술관에서 하나 호쉬의 전시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하나 호쉬는 지난 20세기, 꼴라주 작업이 발전에 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녀는 베를린 다다그룹에 속했던, 아주 중요한 작가임에도 미술사에서 이 부분이 간과되어 왔습니다.

하나 호쉬는 1920년 말에 유럽을 순회하며 숱한 저명한 예술가들과 지식인들과 교류를 형성했는데, 이들 중 Piet Mondrian, Theo can Doesburg, Jurt Schiwitters, Jean Arp, Sophie Taeuber가 있습니다. 그녀가 미국과 고향인 독일에서는 아주 중요한 작가임에도 영국에서는 한번도 전시회를 갖지 않았습니다. 본 전시회의 목적은 하나 호쉬의 종이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서베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특히그녀가 발전에 기여한 꼴라주 포토 몽타주작업을 강조하고, 동시대 예술에서의 중요함을 보여주기 위한것입니다.

전시회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는 무었이었는지?

전시회는 전반적인 연대별 개요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시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912년부터 1926년까지는 하나호쉬가 베를린으로 이주 후 응용예술 및 유리디자인에 대한 작업을 하며 다다운동에대해 긴밀한 참여를 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926년부터 1936년 동안에는 하나 호쉬가 네덜란드에 거주하며 네덜란드시인 Til Brugman과 교류하며 발전시켰던, 그녀의 중요한 시리즈 “from an ethnographic Museum (민속박물관으로부터)”을 조명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936년부터 1945년까지의 작품으로 이동하는데 이에는 대단히 특별한 작품인 독일삽화잡지들로부터 수직한 스크랩북, 혹은 그녀의 개인앨범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945년부터 1978년까지의 작품들은 그녀가 2차세계대전 후 그녀 특유의 추상화로 발전시킨 내용을 보여줍니다.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나요?

매스미디어에서 발췌되어 꼴라주된 작품들이 많아서 손상이 쉽기에 굉장히 조심히 다뤄야 합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비롯해서, 국립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NY), 파리의 퐁피두센터 등에서 가져온 작품들이 많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이 중요한 작품들을 한곳에 모아서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영국에서 하나 호쉬를 조명하는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하나 호쉬는 굉장히 중요한 꼴라주 작가로 절제된 표현법으로 격동적인 대칭세계를 창조하는 작가입니다. 그녀의 세계가 가진 깊이와 폭을 설명하기 위해서 영국에서 이번 전시가 필요했습니다.

런던특파원 김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