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와 동시대 예술가들의 만남

직지와 동시대 예술가들의 만남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 주제전시직지, 금빛씨앗기획하며

 

Jikji

윌리엄 켄트리지, Notes Towards a Model Opera, 2014-15

  

  아주 추운 겨울날 청주를 처음 방문했다. 10년이 넘게 베니스 등 여러 도시에서 6·25전쟁부터 기후변화까 지 다양한 주제로 전시기획을 했지만 청주와 직지는 처음이었다. ‘제1회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의 박우혁 아트디렉터의 제안으로 만난 직지는 청주의 흥덕사에서 1377년에 인쇄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추운 날, 고인쇄 박물관에서 직지의 제작과정을 보며 금속활자는 예술성과 과학 이 결합된 창작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지난 9개월간 과학, 건축, 디자인, 물리학, 미술, 언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고수들께 조언을 얻고 직지에 영감을 받은 작업들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했 다. 디자이너들은 “어! 직지는 그 당시 디자인이네!”라고 했고 과학자들은 “당대 최첨단 기술이네!”라 했다. 페스티벌의 주제전시 ‘직지, 금빛 씨앗’전은 이런 다양 장르 속 직지의 해석을 담고, 금속활자가 그랬듯, 필자에겐 무궁무진한 영감을 주는 또 하나의 씨앗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국경 없이 영감을 주는 씨앗이었으면 한다.

 

  사실 서양권 대부분이, 구텐베르크 성경이 최초로 금속활자를 사용해 인쇄되었고, 특권 소수 층만 공유했던 정보를 기하급수적으로 공유케하여 종교혁명부터 르네상스, 과학혁명까지 촉진시켰다고 배웠다.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나 앞선 고려의 금속활자는 왜 알려지지 않은 걸까? 그 시간성만으로 직지가 세계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저명한 독일학자분을 만나게 됐다. 그는,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가 방한 때 이야기한 ‘한국이 구텐베르크에게 금속활자 기술을 전해줬다는 단서를 스위스인쇄박물관에서 검증받았다’고 했던 일화를 내게 듣고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기술을 어디선가 배웠을 것이라는 가정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구텐베르크는 비즈니스맨이었거든. 그는 성서 이전에 면죄부로 돈을 많이 벌었어. 성서를 찍기까지 시간도 없었고, 어디선가 금속활자를 보고 응용했을 가능성이 커”

 

    그날, 씨앗이 생각났다. 고려에서 주머니에 담은 조립형 금속 활자가 누구에게는 그냥 지나친 철조각이었을 때 다른 누구에 게는 가능성의 씨앗이었던 것 말이다. 그리고 바람에 따라 예상 치 못한 곳에 닿은 씨앗이 연상됐다. 씨앗을 크려면 태양이 필요한데…. 라고 생각하다 보니 무릎을 딱 치게 됐다. 태양, 그래 날일자(日)! 날일자는 조립식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는 굉장히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직지 하권에는 날일자가 아래위가 뒤집어진 채로 3번이나 찍힌 것이다. 날일자를 보면, 위아래가 비슷한지라, 판형틀에 금속 활자 하나, 하나 조립해 나갔을 때 실수를 했던 것이 오늘날 세계사를 뒤 집는 단서가 된 것이다. 오탈자에서 찾은 그 해답도 재밌고, 하필 날일자임이 더 흥미롭다. 태양을 머금은 직지라? 그렇게 금속의 금빛, 불가능을 꿈꾸는 연금술상의 금빛, 그리고 태양의 금빛을 따서 금빛 씨앗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필자가 실제로 큐레이팅 과정에서 론 아 라드, 세미컨덕터, 마시멜로 레이저 피스트, 료이치 쿠로카와 등에게 당신이 이번 전시에 꼭 참여해야 한다고 설득할 때 했던 설명이다. 골든 씨드, 그것이 세상을 바꾼 많은 이들이 꾸는 꿈이다. 실수가 단서가 되는 역발상적인 생각으로 창의적인 직지를 다시 보고 한쪽으로 쏠린 세계사를 다시 묻는 그런 첫 전시를 같이하자는 건 진심이었다.

 

  그리고 존경하는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품 중 메트로폴리탄오 페라에서 감독한 오페라 작품 <The Nose>와 <Notes towards a New Opera>도 이번 전시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 명분은 정확하다. 씨앗의 단면도를 곰곰하게 보면 떡잎이 되는 새싹 외에도 뿌리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씨앗을 생각할 때 뿌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시는 크게 새싹으로 딱딱한 외피를 뚫고 나와 세상의 다양한 가지를 친 구텐베르크적 세계와 그 이후를 조명하며, 우리가 지나치는 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패러다임의 형성 과정의 내면을 보는 작업들과 과거를 새롭게 조명하는 것, 새로이 우리 아티스트가 창작하는 이야기로 마련되어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관을 다시 보는 것 또한 윌리엄 켄트리지가 오랫동안 작업한 맥락이다. 사람들이 달을 보며 해를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오탈자가 나쁘다고만 생각하는 것 처럼.. 직지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금빛 씨앗으로서 단순히 한국작가에게 국한된 소재가 아닌 세계인의 것이었음 한다.

                          


<세계미술현장 – 직지와 동시대 예술가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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