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터’에서 자라나는 생명나무 _ 김승민 큐레이터

pdf 1 pdf 3 pdf 2

 

바닷물고기를집에서키운적이있다. 니모(흰동가리) 한쌍, 바닷가재, 복어, 불가사리, 성게등다양한생명체들은모두내작은어항에맞춤으로들어가는‘미니어처’ 사이즈였다. 진짜바다를수백만분의일로만든축소판이라고해서‘나노탱크’라고불렀다. 이바다의축소판을보면서시간가는줄몰랐다. ‘나노탱크’ 만들기는처음이어렵다. 짠바닷물만어항에넣고물고기를넣으면그들은금세죽어버린다. 그래서물고기를넣기전에먼저어항에바닷물과바싹말라버린바다에서나온작은돌덩어리를함께넣는다. 그리고 2~3주간적당한온도와물의흐름을유지해주면, 우리눈에보이지않던경이로운생태계가이어항속에서조금씩드러난다. 이렇게모든준비가된물속에서만바닷물고기들이살수있다. 올해영국및세계미술계의막대한기대속에개막한런던테이트모던‘현대커미션 2015’의첫번째주인공아브라함크루스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가선보인첫번째작업 <빈터(Empty Lot)>를보며, 필자의바닷물고기어항을떠올렸다. 마치어항에물과돌을미리넣어두듯, 생물체하나없는벽돌로된미술관건물안에위치한터바인홀(Turbine Hall)이라는텅빈공간에런던곳곳의메마른흙을포대기에담아서마치밭과같이꾸민 ‘미니정원’. 이것이현대가후원하는테이트모던의새로운커미션작업제1호였던것이다. 터바인홀에이흙이모여서제목처럼‘빈터’를이루고있었다.   빈땅에서자라나는‘생명체’   터바인홀은테이트모던의 5개층을모두합친높이에그면적은 3400평방미터에달하는거대한공간이다. 마치실내속‘실외’처럼느껴지는공공장소이기도하다. 여기에나무스카폴딩(scaffolding) 구조물로지은3개층높이의빈터가생겼다. 공간위에떠있는듯한빈터위에 240여개의삼각형나무화분들이기하학적으로배치되었고, 런던의큐가든(Kew Garden), 헴스테드언덕(Hampstead Heath), 담당큐레이터마크고드프리(Mark Godfrey)의정원등정말다양한지역의땅에서퍼나른흙과퇴비를담아놓았다. 전체적으로삼각구조물두개가맞물린마름모꼴로되어있어, 멀리서보면거대한밭같기도하고, 미술사적으로살펴볼때에는대지미술을연상시킨다. 과연이빈땅에서생명체가자랄수있을까? 이작품의주역은생명력을내포하고있는‘흙’ 자체이다. 흙에인공빛을쬐어주고, 일주일에두번씩물을주고있다고한다. 자라날생명체를기다리는과정, 그리고빈터의변화자체가작업인것이었다. 필자또한전시개막일에작업을처음보고, 이글을쓰기위해한달남짓지나서작가에게 ‘빈터’의안부를물어보았다. 마치갓태어난아이의안부를묻듯조심스레“뭐가좀자랐나요?”라고묻자“많은식물들이자랐고, 그래서굉장히신난다”는회신이왔다. 크루스비예가스의‘자동건축(Auto-construction)’이이번에도또다른의미의성공을거둔것이다. 크루스비예가스는남미의정치적사회적맥락속에서발견된오브제를쌓고이어서조각과설치를하는작가다. 멕시코의아주스코(Ajusco)에서자라면서체험한, 자생적으로변화하는도시의모습에영감을받아계속변화하는작품인‘자동건축’의세계를구축했다. 이구조물을구축하는방법자체가크루스비예가스의경험과사고와기인한것이고, 각장소의지역성을내포한거대한은유로존재하게된다. ‘희망’을보여주고싶었다는크루스비예가스의작업은도시, 자연, 가능성, 변화등여러가지담론을표현한다. 그는주변의사물을재활용해서새로운의미를부여하는작품으로도잘알려져있다. 2012년광주비엔날레에서는 1930년대에지어진광주극장의사택에서 3주간거주하며‘자동건축작업실: 비효율적인땜질워크숍’이라는작업을진행했다. 사택이지만이미집의기능이중지된공간에서발견된오브제에노동력을가해작업을만들고공간이변화되는작업은죽은공간이다시살아나는듯한기묘한느낌을주었다.   현대커미션, 유니레버시리즈에도전장   크루스비예가스가이번에터바인홀에서선보인 <빈터> 자체의생명력은부인할수없다. 하지만전세계적으로엄청난반향을일으켰던테이트의‘유니레버시리즈(The Unilever Series)’가끝나고곧바로‘테이트현대커미션’이시작하는자리였기에, 어쩌면사람들의너무나도커져버린기대치에는미치지못했을수도있다. ‘유니레버시리즈’는미술사적으로중요한자취를남겼다. 유니레버라는기업의긍정적인이미지는테이트의세계최상급의문화적위상과연결되어 10년간의스폰서십을 3년더연장해 2000년부터 2012년말까지 13개의유니레버시리즈로, 터바인홀을가득매운대형설치작품을선보였다. 관객모두가터바인홀바닥에누워석양을보듯바라봤던올라퍼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Weather Project>(2003), 1억개의도자기로만든해바라기씨를바닥에수북이깔았던아이웨이웨이(Ai Weiwei)의 <Sunflower Seeds>(2010), 그리고실제로미술관바닥을마치홍해가갈라지듯갈라놓아여러매체에서“획기적인미술”라고대서특필했던도리스살세도(Doris Salcedo)의 <Shibboleth>(2007)가모두유니레버시리즈의일환이었다. 매해갈수록유니레버시리즈의작품은작업의의미와파격성그리고스케일모두가실제로사상최고라고할수있었다. 그렇기에테이트모던과유니레버의결별은큰아쉬움을남긴것이다. 유니레버시리즈에이어서같은곳에서향후 11년간지원을약속한현대자동차의결정은엄청난파격이자이전의미술사적업적에대한도전이라고할수있다. 지난 2000년, 테이트모던이‘밀레니엄프로젝트’의일환으로공공기금인헤리티지복권기금(The Heritage Lottery Fund)과영국예술위원회(British Arts Council)의후원을받아런던시내에서도소외되었던서더크(Southwark) 지역에오픈했을때, 지금처럼미술계의판도를바꾸고나아가주변부동산에까지영향을끼치리라고는아무도상상하지못했을것이다. 테이트모던은서더크의오래된화력발전소건물에조성되었는데, 강건너‘부자동네’인금융중심지구시가지(City of London)의세인트폴대성당과바로마주보는위치다. 이제는두곳모두런던을관광할때빠트릴수없는상징적인랜드마크로서그사이를밀레니엄다리(Millennium Bridge)가잇는다. 대성당은관광지가됐고, 아이러니하게도테이트모던은사뭇‘종교적인’ 공간이됐다. 테이트모던이이렇게자리매김하기까지한몫을했던것이바로유니레버시리즈이다.   현대커미션, 미술관을넘는또다른물결?   얼마전테이트재단(The Tate Gallery Foundation)이 1990년부터 2006년까지석유재벌 BP로부터약 380만파운드(약 66억 7,700만원)의후원을받았다는기록이공개됐다. 1년당 4억원정도의후원액에대해 BBC의윌곰페츠(Will Gompertz)는예술기관으로서는큰액수라고평했지만, 《가디언》의보도에따르면캠페인주최자는“부끄러울만큼작은금액”이라고밝혔다. 기업의문화예술후원이활발히이루어지는영국에서조차아직까지정부지원금에비해기업의사회공헌기여도가적은편이지만, 한국에비해서는상당히많은다국적기업의러브콜을받고있는상황이다. 매체에서기업의문화예술후원사례를언급할때마다빠지지않고나오는유니레버의사례는약 440만파운드(약 77억 3,400만원)의가치를창출했다고들한다. 한편, 매체에서는이번현대커미션의가치를 500만파운드(약 87억 8,900만원)로산정하고있다. 앞으로현대커미션이어떤족적을남길지기대되는액수이다. 기존의미술관및박물관이소장품을보존하는역할에충실했다면, 이제는미술관이마치테이트의사례처럼사람들의마음을움직이고창작활동의도화선이되는상징적장소로거듭나고있다. 현재터바인홀의 ‘빈터’에서자라나고있는생명체(식물)처럼말이다.빈터가더욱큰생명체를품는일은버려진돌들에서바닷물고기가살수있는 ‘나노바다’가만들어지듯기존의미술관개념을넘는또다른물결을가져올수있을것으로기대한다.